작품 배치도

상태들 States
① 40%② 65%③ 100%

높이들 Heights
④ +940 mm⑤ +1,450 mm⑥ +1,970 mm

⑦ 날들 Days

전시 서문

김유한 개인전 《공간의 종(류)들 Species in a Space》오독이 지은 방

조르주 페렉의 『공간의 종류들』은 한 장의 페이지에서 시작해 침대와 방, 아파트와 건물, 거리와 도시와 나라로 뻗어 나가며 우리가 사는 공간을 하나씩 목록으로 만든 책이다. 김유한은 이 책의 영문판 제목 Species of Spaces에서 species를 생물의 종(種)으로 읽었다. 잘못 읽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그 오독을 고치는 대신 그대로 밀고 나간다. 《공간의 종(류)들》이라는 제목의 괄호는 틀린 독해를 지우지 않고 남겨 둔 자리다.

괄호를 치는 버릇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새탕라움에서 연 첫 개인전의 제목은 《A (work)Room of One's Own 자기만의 방》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 한가운데에 work를 끼워 넣어 작업실로 바꿔 놓은 제목이다. 2022년의 《개와 고양이가 있는 방 Canine, Feline, and Adeline》은 개와 고양이 뒤에 사람 이름 하나를 운으로 끌어다 붙였고, 지난 7월의 《pe(des)tals!》는 좌대(pedestal)에서 괄호 하나를 들어내 꽃잎(petal)을 꺼냈다. 네 번의 제목이 전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단어를 정확히 읽는 대신 조금 어긋나게 읽고, 그 어긋난 자리에서 전시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이번 오독도 사고라기보다는 습관에 가깝다.

전시는 짧은 소설 한 편과 설치물들로 이루어진다. 소설은 1인칭으로 진행된다. 화자는 실패를 겪은 뒤 반지하 방으로 옮겨 오고, 어느 날 흘러들어 온 길고양이와 동거를 시작한다. 그는 방 안의 고양이를 오래 관찰한다. 이야기의 중반을 넘기면 그 관찰의 조건이 드러난다. 말하고 있는 화자가 이미 죽어 있고, 희미한 의식만이 방에 겹쳐 있다. 이후 방에서는 가구가 하나씩 실려 나가고, 마지막에 고양이가 반지하의 높은 창을 넘어 밖으로 나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사람과 동물의 훈훈한 교감을 기대하면 어긋난다. 담담하고 건조한, 도시의 유령 이야기에 가깝다.

한 칸의 방에 두 종이 산다. 사람에게 침대는 자는 곳이고 캐비닛은 넣어 두는 곳이지만, 고양이에게 그것들은 이름이 아니라 높이이고 경로다. 사람은 수평으로 움직이고 고양이는 수직으로 움직인다. 같은 방이 두 개의 방이 된다.

이 문장을 그는 이미 한 번 써 본 적이 있다. 2022년 《개와 고양이가 있는 방》에서 첫 번째 전시장은 전체가 하나의 고양이 계단이었다. 책상과 의자와 선반은 고양이 앞에서 층계가 되었고, 본디의 용도와 이름은 물러난 채 서로 간의 높낮이와 배치만 남았다. 두 번째 전시장은 벽난로가 타워가 되고 소파가 발판 달린 개의 집이 되는 거실이었다. 사람의 필요와 동물의 사용이 애매하게 겹쳐 있는 방. 반려동물을 데리고 들어올 수 있는 전시였으니 그 겹침은 전시 기간 내내 실물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그때의 관찰을 다시 꺼내어 한 사람의 죽음 쪽으로 밀어붙인다.

소설 안에 높이의 이미지가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언덕 위의 동네, 지면 아래의 방, 고양이가 올라타는 가구들, 그리고 마지막 창 너머의 지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겨우 바깥의 평지에 닿는 데서 끝난다.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읽어 볼 수도 있다. 의식만 남은 화자에게 그 방이 육신을 대신하고 있다고 본다면, 한 칸을 기능 단위로 나누던 가구들이, 그러니까 자는 자리와 넣어 두는 자리와 끓이는 자리가 하나씩 실려 나가는 장면은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일에 가까워진다. 그렇게 보면 이 소설은 한 사람이 완전히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숨이 멎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이름과 쓸모가 전부 지워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말이다.

설치물들은 소설 속 방을 재현한 소품이 아니다. 같은 질문을 나무로 다시 묻는 별개의 제작물이다. 바닥에 놓인 작품군에는 제작 진행도가 캡션처럼 붙는다. 40퍼센트의 의자, 65퍼센트의 캐비닛, 100퍼센트의 테이블. 나무 토막의 집합은 어느 지점부터 가구라는 이름을 얻는가. 벽면의 작품군은 반대 방향으로 간다. 상판을 떼어낸 테이블, 좌판을 들어낸 의자, 옆으로 눕힌 책장이 940밀리미터, 1,450밀리미터, 1,970밀리미터라는 높이값만 남긴 채 벽에 걸린다. 기능을 잃은 가구는 더 이상 가구가 아니지만, 고양이에게는 여전히 디딜 곳이다.

바닥의 질문은 그의 첫 전시로 곧장 이어진다. 2021년 그는 전시장 한쪽에 연필을 깎는 자리를 만들어 두고 〈최초의 목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시가 지루하면 여기서 연필이나 깎으시라는 안내와 함께였다. 도구로 나무를 깎아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일, 그 가장 원초적인 목공을 말없이 반복하다 보면 문장 앞에 서 있던 주어가 먼저 사라지고 행위만 남는다고 그는 적었다. 끝까지 깎으면 연필조차 부스러기가 되어 사라진다. 40퍼센트의 의자 앞에서 우리가 묻게 되는 것도 결국 같은 질문이다. 이름이 붙기 전과 이름이 지워진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가구가 되어 가는 과정과 가구이기를 그만두는 과정이 한 공간의 바닥과 벽에서 마주 본다. 소설에서 가구가 사라지며 방의 기능이 지워졌다면, 전시장에서는 그 순서가 뒤집힌다. 이 대칭이 알려 주는 것은 단순하다. 기능이란 사물에 붙어 있는 성질이 아니라 사람이 잠시 빌려준 이름이라는 것.

이름의 문제를 배경 쪽에서 다룬 것이 《pe(des)tals!》였다. 좌대는 위에 놓인 것을 돋보이게 하려고 스스로를 지워야 하는 물건이고, 주문받아 만드는 가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만드는 사람의 취향은 대체로 억제되는 쪽으로 작업이 굴러간다. 그는 그 지워진 배경을 전시장 한가운데로 옮겨 놓았다. 좌대는 작품을 지지하고, 목공은 그의 생계를 부양하며, 좌대 위에 올려 둔 사소한 물건들은 그의 마음을 떠받친다. 지지와 부양이 결국 같은 동작이라는 것을 그는 작업대에서 먼저 배운 사람이다. 이번 전시에서 지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다른 종의 동선이다.

첫 전시에서 그는 이것이 가구에 대한 전시가 아니라고 미리 못을 박아 두었다. 10여 년을 성실하게 다닌 회사에서 나와 흠모하던 목공을 직업으로 바꾸는 과정, 그리고 그 변환에 따라오는 부작용에 관한 기록이라고 했다. 자기만의 공간과 그 공간을 유지할 경제력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여 있던 전시였다. 5년이 지나 그는 다시 방을 다룬다. 다만 이번 방에는 그 방을 얻어낸 사람이 없다. 남아서 방을 쓰는 것은 이름도 쓸모도 필요로 하지 않는 다른 종이다.

새탕라움 역시 공간의 한 종류다. 그사이 새탕라움은 서사로에서 동문로로 자리를 옮겼고, 지금의 전시공간은 다시 김유한의 목공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모든 창의 빛을 막고, 벽을 세우고, 전시 동선을 고려해 문을 내고 안내 데스크를 짜 넣은 일이 모두 그의 작업이었다. 관람객이 딛고 선 바닥과 등지고 선 벽이 이미 그의 손을 거친 것이라면, 공간의 종류를 세는 일은 전시장 문 바깥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만든 사람이 보는 것과 보러 온 사람이 보는 것 사이에는 어김없이 어긋남이 생긴다. 작가는 현대미술 앞에서 자신에게도 '잘 모르겠다'의 지분이 상당하다고 말한다. 전시장에 잘못 들어온 고양이의 시선이나 미술을 잘 모르는 채로 서 있는 사람의 시선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전시는 그 어긋남을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 오독은 이 전시가 시작된 방식이자, 관람객에게도 허락된 방식이다.

방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아마 높이가 먼저 보일 것이다. 사람의 눈높이로는 잘 보이지 않던 모서리와 선반, 바닥에서 940밀리미터쯤 되는 자리. 거기가 누군가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여전히 열린 창이 하나 있다.

상태들 States

상태들 States
3점 설치, 의자·캐비닛·테이블, 목재 등
① 40%
② 65%
③ 100%

높이들 Heights

높이들 Heights
3점 설치, 변형된 테이블·의자·책장, 목재 등
④ +940 mm
⑤ +1,450 mm
⑥ +1,970 mm

날들 Days

날들 Days
텍스트 설치
전시 기간 중 7일에 걸쳐 순차적으로 더하여 완성
1/7

불빛이 빠르게 방 안을 비추고 지나가면서 나는 흠칫 정신을 차렸다. 이내 작은 창으로 다시 강한 빛이 들어와 방 전체를 좌에서 우로 훑고 사라졌다. 골목을 돌아 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였다.

나는 하루 종일 이 작은 방에 해가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의 불빛은 한나절에 걸쳐 해가 방 안을 비추며 지나가는 느린 동작을 몇 초 만에 빠르게 재생한 듯했다. 아니면 그것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되감은 것 같기도 했다. 하루였나 이틀이었나 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하루가 통째로 넘어가거나 지나갔던 하루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그라지기도 했다. 이 과정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리판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은 채 복사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빈 하루가 한 장씩 더 쌓일 뿐이었다.

내가 이 집에서 생활할 때는 늘 두꺼운 커튼을 쳐 두었다. 세로폭이 짧은 창은 천장에 바짝 붙어 있었고, 유리 너머의 지면은 아래쪽 창틀 바로 위를 지나갔다. 사람의 다리와 자전거 바퀴가 머리 위를 좌우로 가로질렀다. 그럴 때면 부스럭거리거나 짧게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창이 쳐져 있었지만 너무 성겨서 누군가 팔을 어깨까지 쑥 밀어 넣고 집 안의 물건을 집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녹슨 나사 몇 개는 흔들거렸고 힘만 주면 뚝 떼어낼 수 있어 보였다. 이 반지하 방에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들어오려는 시도는 대체로 타산이 맞지 않을 것이기에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따금 성큼거리는 걸음들이 그대로 방 안을 향하는 것 같아서 나는 창을 닫아 잠그고 커튼을 사다 달았다. 환기를 위해 창을 열어 두는 때도 있었지만 바로 앞에 자동차가 서 있거나 먼지를 일으키는 일이 많아 주로 닫고 지냈다. 이 방에서는 원래 시간의 흐름을 잘 느끼지 못했다.

낮 동안 기우는 해를 따라 고양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눅눅한 방에서 습기를 먹은 털을 말리려는 건지, 조금이라도 포근한 자리를 찾는 건지, 볕이 드는 곳을 따라 몇 번씩 자리를 옮겨가며 잠을 잤다. 꽤 많이 잤다. 대부분의 시간을 자는 데 썼다. 그러다 이따금 의자에 올라가거나 발톱으로 식탁 다리를 긁어댔고, 등을 둥글게 말았다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으므로 고양이가 지나가거나 머무른 자리를 머릿속에서 선으로 따라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오가던 길도 떠올려 보았다. 고양이는 움직임이 많지는 않았다. 먼지를 쫓기도 하고 벌레를 잡기도 했다. 의자와 식탁, 책장과 선반 사이를 오가며 한 칸짜리 방 안에서 보이지 않는 층계를 오르내리는 것 같았다. 허공을 바라보며 소리를 낼 때도 있었는데 내게 말을 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는 천장에 달린 가스 감지기가 규칙적으로 불빛을 깜빡였고 방 한쪽에 놓인 제습기에는 물통이 가득 찼다는 표시등이 켜져 있었다. 창문이 열려 있으니 가동된다 해도 별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집 안은 별로 꿉꿉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2/7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던 당시 내가 보던 집들은 주로 높은 동네에 있었다. 그리고 그 높은 동네에서도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다시 낮은 공간이었다.

처음 이 방을 보러 왔을 때도 한참을 걸어 올라와야 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고, 시장을 지나 경사가 급한 골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마지막에는 건물들 사이의 계단을 올랐다. 부동산 중개인은 숨도 차지 않는지 네댓 걸음 앞서 계속 걸었다. 거의 다 왔다고 두 차례 말하고도 한동안 더 올라갔다. 덥고 습한 한여름 날씨 탓에 셔츠가 다 젖을 무렵 허름한 건물 입구에 다다랐다.

거기서 다시 계단을 반 층 내려갔다. 어두운 계단참에 가라앉아 있던 무거운 공기가 훅 하고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군데군데 녹슨 철제 현관문을 열자 세 평 남짓한 방이 나왔다. 한참을 올라온 뒤 반 층을 내려가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는 방이었다.

방은 작은 주방이 분리되어 있는 구조였는데 생각보다 넓어 보였다. 중개인은 곧 따라 내려온 집주인과 함께 반지하의 장점을 만담처럼 주고받기 시작했다. 나는 손부채질을 하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난방을 조금만 해도 따뜻하다고 했다. 적어도 여름 이야기는 틀렸다. 창문이 있어 반지하치고는 답답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벽 한쪽에 남은 곰팡이 흔적에 내 시선이 오래 머무르자 집주인은 전 세입자가 도통 관리를 하지 않아 그런 것이라며 그쪽만 새로 도배를 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곰팡이가 슨 자국이 무엇을 닮았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자 집주인은 반지하지만 지대가 높아서 습하지 않은 편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중개인의 동의를 구했다. 무슨 기준에서 높은 것과 낮은 것이 서로 상쇄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여 두 사람의 눈길을 내게서 거두게 했다. 집주인은 방구석에 있던 오래된 제습기를 비장의 무기처럼 끌어내 보여 주며 이것만 자주 켜 놓으면 괜찮다고 말했다. 외출할 때는 꼭 켜 놓고 나가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집을 많이 보지는 않았다. 그때까지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내가 마련할 수 있는 보증금과 매달 나갈 돈을 셈해 보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당시에는 최대한 빨리 형편에 맞는 곳을 구해 얼마 되지 않는 짐을 밀어 넣고, 그 안에 나까지 같이 넣어 두고 싶었다. 이것보다 나은 집을 찾으려면 더 부지런히 돌아다니거나 운이 좋기를 바라야만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고, 무엇보다 그날은 너무 더웠다. 나는 집을 나서는 길에 가계약금을 보냈고 그 주말에 바로 들어왔다.

용달차 한 대에 침대와 식탁, 낮은 장, 책장, 선반, 의자 하나, 옷가지가 든 플라스틱 상자들을 실어왔다. 비어 있을 때 넓어 보였던 방은 가구가 들어오자 거의 남지 않았다. 침대를 한쪽 벽에 붙이고 식탁을 놓았다. 낮은 장을 밀어 넣고 책장과 선반을 세웠다. 구석에 풀지 못한 상자들을 쌓아두자 바닥에는 가구와 가구 사이를 오가기 위한 길만 남았다.

침대와 식탁 사이는 한 사람. 식탁과 책장 사이는 반 사람. 현관으로 가려면 어느 지점에서 몸을 옆으로 틀어야 했다. 처음 며칠은 정강이나 발가락을 여기저기 부딪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을 켜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었다.

식탁에서는 밥을 먹고 노트북을 펼치고 가끔 책을 봤다. 한쪽에는 정리하려고 가져온 우편물과 영수증을 쌓아두었다. 책장에는 수건과 속옷과 화장지가 책들을 점차 밀어내고 자리 잡았다. 의자는 필요할 때마다 몇 걸음씩 끌려다녔다. 그렇게 물건들의 자리가 정해지자 내가 움직이는 자리도 함께 정해졌다. 외출하는 날은 점점 줄었다. 하루는 대개 침대와 식탁, 싱크대와 화장실 사이를 몇 번 오가는 것으로 끝났다.

이사 온 뒤 몇 번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꿈을 꾸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은 채 눈만 뜬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네모난 수족관 바닥에 누워 수면을 올려다보듯 천장의 얼룩을 응시한 채 손끝이 먼저 움직이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온전히 깨어나면 주변은 유난히 어두웠고 방 한쪽에서는 제습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웅웅거렸다. 몸을 일으켜 물 밖으로 잠시 나온 사람처럼 크게 숨을 몰아쉬고 도로 누워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면 물통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것을 비우고 다시 켰다.

3/7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이어졌다. 집주인이 새로 발라 준 벽지는 원래 벽과 무늬도 색도 달랐다. 곰팡이가 있던 자리만 네모나게 도려내 다른 방의 벽을 붙여 놓은 것 같았다. 날이 습해지자 그 아래로 옅은 푸른색 얼룩이 슬금슬금 비쳐 나왔다. 나는 책장을 옮겨 얼룩을 가렸다.

따지거나 불평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집주인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상황을 가능한 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몇 번인가 문을 두드리고 간 적도 있었는데, 나는 불을 켜지 않은 채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월세는 늘 입금일 오전에 보냈고, 공용 수도 요금과 계단 청소 명목으로 받아 가는 한 달 만 원의 관리비도 연락이 오기 전에 보냈다.

집주인이 두고 간 제습기는 생각보다 잘 작동했다. 돌아가는 동안 후덥지근한 바람을 뿜었지만 벽과 이불은 금세 보송해졌다. 밥을 매번 해 먹는 것도 아니었고 전등도 잘 켜지 않았으므로 전기요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적막한 방에 티브이를 틀어 놓듯 제습기는 거의 종일 돌아갔다.

비가 며칠씩 그치지 않자 반나절이면 작은 물통이 가득 찼다. 제습기가 멈추면 방이 물속처럼 먹먹하게 느껴졌다. 작은 방의 어딘가에 이만큼의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미상의 수원지가 숨어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물통을 비우고 제자리에 끼우면 제습기는 다시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동안에는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일을 했다.

너무 더워서 버틸 수 없겠다 싶은 날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제습보다 환기를 택했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현관문을 조금 열어 둔 뒤 선풍기를 틀었다. 애써 낮춰 놓은 방 안의 습도는 다시 올라갔지만 온도는 조금 내려갔다.

삼색 고양이 한 마리와 몇 번 마주친 건 그 무렵이었다. 반 층 위의 건물 입구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며 얼쩡거리고 있었다. 이 동네에는 원래 고양이가 많았고 밤이면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으므로 특별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목덜미 쪽의 무늬가 특이해서 같은 고양이라는 건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볼 때마다 저 무늬가 무엇을 닮았는지 생각했다. 날이 더운 어느 날 물그릇 하나를 현관 앞에 내놓았더니 고양이가 와서 물을 마셨다. 이후 장을 보러 나갔다가 반려동물 코너에서 간식 파우치 몇 개를 사 왔다. 언제 줄 수 있을지는 몰랐다.

그날도 제습기의 물통을 비운 뒤 저녁 무렵 현관문을 조금 열어두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보니 고양이가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현관 바로 안쪽 싱크대 발치에서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있었는데 내가 나타나도 쳐다볼 뿐 바로 달아나지는 않았다.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게 경계를 풀었다는 뜻인지, 빠져나갈 길부터 살피는 중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맨몸에 수건만 두른 채 사다 놓은 파우치를 조심스레 뜯어 접시에 덜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내가 조금 물러난 뒤에야 다가와 먹었다. 먹고 나서는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식탁 아래로 기어들었다가 낮은 장 옆을 지나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잠시 뒤에는 열린 문밖으로 다시 나갔다.

몇 주 동안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와 먹고 한동안 머물다가 나갔다. 어떤 날에는 보이지 않았고, 어떤 날에는 내가 문을 열기도 전에 계단참에 앉아 있었다. 나는 환기를 좀 더 자주 했다. 고양이용 그릇 두 개를 따로 마련했고 사료도 추가로 사두었다.

언제부터 밤에도 남아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고양이와 같이 살아야겠다고 결정한 적은 없었다. 당시에는 다시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고양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내가 내보내지 않았고, 그쪽도 떠나지 않았다.

4/7

고양이와는 그럭저럭 지냈다.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불러도 오는 편이 아니었고 이름이 없어서 특별히 불편한 일도 없었다. 마트에 갈 때면 내 먹을 것과 함께 사료도 몇 개 사 왔고 물그릇이 비어 있으면 채웠다. 고양이는 어느새 그런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현관문을 살짝 열어 놓은 날에는 고양이가 밖에 다녀오기도 했다. 한참 뒤에야 돌아오는 날도 있었지만 나가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더위가 조금씩 가시면서 나도 현관문을 열어 두는 일이 줄었다. 고양이는 생각보다 이 방에서 나와 함께 지내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 듯했다. 아니면 나처럼 이 작고 좁고 낮은 공간이 바깥에서 사는 것보다 쾌적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식탁 아래에 엎드려 있거나 낮은 장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았고, 의자에 앉아 내가 누워 있는 것을 바라보기도 했다. 정확히는 나를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서로가 그리 살가운 관계도 아니었고, 나는 그저 이 고양이가 들어온 것처럼 어느 날 자연스럽게 떠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고양이에게 이천 원짜리 습식 사료 하나를 뜯어 주었다. 당시 나는 여전히 밥을 잘 챙겨 먹지 않았는데, 하루는 녀석이 유난히 잘 먹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도 왠지 허기를 느꼈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반찬을 꺼내고 즉석밥을 데워 식탁에 앉았다. 고양이는 바닥에서 먹고 나는 식탁에서 먹었다. 먼저 다 먹은 고양이가 낮은 장 위로 올라왔다가 식탁 모서리에 앞발을 걸쳤다. 나는 손으로 밀어냈고 고양이는 별 저항 없이 내려갔다. 잠시 뒤에는 책장 위에서 낮게 골골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저녁이 몇 번 있었다.

고양이는 바닥에서 의자로, 의자에서 식탁으로, 식탁에서 책장이나 선반으로 올라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겼고 어떤 날에는 같은 자리에서 몇 시간씩 잤다. 커튼을 걷어 창밖 구경이라도 할 수 있게 책장을 창 아래로 옮겨 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창은 천장 가까이에 붙어 있어서 바닥에서는 꽤 높았지만 책장 위에 올라가면 창턱까지는 닿을 것 같았다. 문제는 책장 칸마다 들어찬 물건들을 먼저 꺼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옮기고 나면 뒤에 가려 두었던 푸른 얼룩도 다시 보게 될 터였다. 책장 뒷면까지 곰팡이가 번졌을지도 몰랐다. 당시의 나에게는 그 모든 일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그 뒤로도 몇 번 고민했지만 책장은 그대로였다. 지금은 옮기고 싶어도 옮길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옮기는 것이었는지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안에 든 것을 꺼내고, 몸을 낮추고, 양쪽을 잡아 끈 뒤 물건들을 다시 올려놓으면 되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 정도의 일은 귀찮을 뿐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제습기의 물통도 가득 차 있다. 표시등이 켜진 뒤로 기계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물통을 비워야 한다고 거듭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던 일이었다. 물통을 앞으로 잡아당기고, 화장실에 가져가 물을 버리고, 다시 밀어 넣으면 된다. 하지만 생각한 뒤에 이어지는 일이 없다. 고양이의 그릇도 비어 있다. 전 같으면 빈 그릇을 보자마자 사료를 챙겨 주거나 물을 갈아줬을 것이다. 지금은 고양이가 그릇 근처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고도 그저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다. 오래 누워 있었던 것 같은데 잠에서 깨어난 느낌도 없다. 내가 앉아 있는지 서 있는지, 방의 어느 쪽에 있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듯하다가도 그런 것을 확인할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디에나 내가 조금씩 있는 것 같다. 커튼은 여전히 쳐져 있어 방 안은 낮에도 어둡다. 가스 감지기의 작은 불빛은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인다.

고양이는 식탁 아래를 지나 의자로 올라간다. 잠시 앉아 있다가 식탁으로 뛰어오르고 책장 위로 올라간다. 한동안 그곳에 머물다가 내려와 방 안을 돌아다닌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다.

5/7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처음에는 몇 번 두드리다 그치지만 곧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고양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방 안쪽으로 물러나다가 낮은 장 뒤로 몸을 숨긴다. 문밖에서 한동안 인기척이 이어지더니 열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난다. 현관문이 열리고 집주인이 조심스럽게 몸을 들이민다. 세 차례 더 이름을 부른 뒤 안쪽 방으로 들어온다.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걸음을 멈춘다.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난다. 시선은 고정한 채 손만 뻗어 불을 켜고 또 한 번 내 이름을 부르지만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며 현관 밖으로 황급히 나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들어온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신발을 신은 채 좁은 방 안을 분주히 오가고 집주인은 현관 근처에 서서 굳은 얼굴로 질문에 대답한다. 고양이는 숨은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몸을 살펴보고 몇 가지를 확인한 뒤 들것을 가져온다. 침대에서 나를 옮겨 싣고 현관을 빠져나간다. 사람들이 나를 데리고 나간 뒤에도 나는 방 안에 있다.

조금 전까지 여러 사람이 오가던 방은 다시 조용해진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다가 낮은 장 뒤에서 고양이가 얼굴을 내민다. 바닥의 낯선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방 가운데로 걸어 나온다.

집주인은 한참 뒤 다시 들어온다. 방 안을 멀찌감치 둘러보다가 숨을 잠깐 참은 채 잰걸음으로 창가까지 가서 커튼을 걷는다. 순간 밝은 빛이 훅 하고 들어온다. 삐걱이는 얇은 이중창을 밀어 연 채로 둔다. 바깥 공기가 들어오고 오래 움직이지 않던 커튼이 조금씩 흔들린다. 집주인은 멈춰 있는 제습기를 한 번 내려다보지만 물통을 꺼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현관문을 닫고 나간다.

창이 열린 뒤로 방 안에 빛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고양이는 볕이 드는 곳을 따라 몇 번씩 자리를 옮긴다. 낮에는 창 너머로 사람들의 다리와 자전거 바퀴가 지나가고, 밤에는 자동차의 불빛이 스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다 현관문이 다시 열린다.

이번에는 집주인이 남자 둘을 데리고 들어온다. 한 사람은 나이가 좀 있어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앳되다. 남자들은 가구들의 크기를 눈으로 가늠한다. 한 사람이 벽 가까이 다가갔다가 코를 찡그린다.

“여기 습하긴 하네요.”

집주인은 벽지와 바닥을 번갈아 살핀다.

“도배는 다시 해야 될 것 같고, 장판도 봐야겠어요.”

“가족들은 뭐래요?”

“귀중품이나 서류 같은 것 있으면 따로 상자에 담아두고, 나머지 큰 짐들은 알아서 정리해 달래요. 직접 오기는 어렵다네요.”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익숙한 동작으로 빈 종이상자를 펼친다. 책장과 낮은 장 위에 놓인 물건들을 하나씩 들여다보지만 아직 손을 대지는 않는다. 한 사람이 싱크대 앞에 놓인 그릇과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사료 봉지를 발견한다.

“고양이도 있었나 봐요?”

집주인이 방 안을 둘러본다.

“그런가 봐요. 난 몰랐는데.”

사람들은 혀를 차듯 소리를 내며 고양이를 불러보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없는 것 같은데요.”

“어디 숨어 있을 수도 있죠.”

나이 든 남자가 사료를 그릇에 넉넉히 덜어 놓고 물도 새로 받아 놓는다.

“혹시 있으면 먹겠죠.”

다른 남자가 열린 창을 가리킨다.

“이거 계속 열어둘까요?”

“네. 냄새도 좀 빼고 습기도 빠지게요.”

“고양이가 있으면 괜찮으려나.”

세 사람이 일제히 창을 올려다본다. 집주인은 잠시 열린 창을 바라보다가 말한다.

“저기까지는 못 올라가겠죠.”

방 가운데 애매하게 놓인 식탁 때문에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몸을 비켜야 한다. 한 남자가 식탁 상판을 두드려본다.

“일단 이거부터 빼고 다른 걸 정리하는 게 낫겠는데요.”

다른 사람이 묻는다.

“그럼 오늘 책상 먼저 뺄까요?”

그건 식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서 밥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트럭은 내일 불러서 한꺼번에 뺄 건데, 이거 놔둘 만한 데 있나요?”

“책상은 그럼 버리지 말고 옥상 계단에 놔두죠. 짐들 올려놓기 좋겠네.”

두 사람이 식탁 양쪽을 잡아 들어 올린다. 상판을 세운 뒤 몸을 틀어 방문 밖으로 빼낸다. 다리가 문틀에 한 번 걸렸다가 방향을 바꾸자 빠져나간다. 식탁이 현관문 밖으로 사라진다. 창문은 여전히 열려 있고 커튼은 한쪽으로 걷혀 있다. 사람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고양이는 숨어 있다. 방 가운데 식탁이 있던 자리만 넓게 비어 있다.

6/7

식탁이 있던 자리에서 고양이가 멈춰 선다. 평소에는 의자 위로 올라갔다가 식탁을 거쳐 책장이나 선반으로 옮겨가곤 했다. 의자에 올라가 비어 버린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잠시 뒤 고양이는 몸을 낮췄다가 그대로 책장 위로 뛰어오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 뛴다. 저 정도는 뛸 수 있구나. 그 사이를 두어 번 오가고 나서는 식탁이 있었던 때와 별 차이 없이 움직인다.

식탁으로 가려져 있던 바닥에 볕이 오래 머문다. 고양이는 그 자리를 지나가다가 멈춰 빛 속에 떠다니는 먼지를 앞발로 휘젓는다.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같은 짓을 반복한다. 그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간다. 그사이 방에 들어온 햇빛이 길게 늘어지면서 어느새 방은 어두워진다.

다음 날 창으로 다시 햇빛이 들어올 무렵, 어제 왔던 두 남자가 찾아온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양이는 잽싸게 부엌 쪽으로 빠져나가 방에서 사라진다. 남자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책장과 낮은 장에 든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중요해 보이는 서류와 몇 가지 물건만 작은 종이상자에 넣고 대부분은 쓰레기봉투로 들어간다. 한 남자가 책장과 침대 사이에 꽂혀 있던 철사를 뽑아 든다. 끝이 갈고리처럼 구부러져 있다. 몇 번 접어 버리는 쪽으로 던진다. 옷걸이를 펴서 만든 것이었다. 세 번째 시도 만에야 쓸 만한 모양이 나와 꽤 만족했다. 자다가 충전선이 매트리스와 벽 사이로 빠지면 그걸로 건져 올리곤 했다. 커다란 쓰레기봉투 두 개가 금세 불룩해지지만 상자는 끝내 반도 차지 않는다.

빈 책장을 한 사람이 들고 방 밖으로 나가자 가려져 있던 푸른 얼룩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책장을 그 앞에 세웠을 때보다 짙어진 것 같기도 한데 확실하지는 않다. 자세히 보니 새로 붙인 벽지의 가장자리 한쪽이 조금 들떠 있다. 그 아래로 색과 무늬가 다른 벽지가 몇 겹 겹쳐 보인다. 선반과 의자, 낮은 장도 차례로 밖으로 나간다. 가구가 줄어들수록 사람들은 몸을 비키거나 옆으로 틀지 않고 방 안을 오갈 수 있게 된다. 이 집으로 들어온 뒤 몇 달간 내가 열어 보지도 않은 옷상자들도 잠깐 뚜껑이 열렸다가 도로 테이프가 붙은 채 밖으로 나간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처럼 방은 다시 넓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침대를 치운다. 매트리스를 세워 밖으로 빼내자 벽 아래쪽이 드러난다. 벽지에는 사람 하나가 길게 누운 듯한 누런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몇 달 사이에 생긴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이사 왔을 때부터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 방에서 침대를 놓을 만한 자리는 거의 거기뿐이었다. 전에 살던 사람도 같은 벽에 침대를 붙여 놓았을지 모른다. 다른 곳에 놓는 모습을 떠올려 보려 하지만 마땅한 자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그 전 사람도, 그보다 전 사람도 비슷한 방향으로 누워 있었을 것이다.

침대를 옮기고 들어오던 남자가 싱크대 앞의 그릇을 내려다본다.

“어, 이거 어제 그대로인 것 같은데요.”

“안 먹었나?”

“없나 본데요. 나갔거나.”

“그런가.”

사람들은 더 이상 고양이를 찾지 않는다.

쓰레기봉투와 작은 상자까지 모두 나가고 현관문이 닫힌다. 비어 버린 방 안에서는 한동안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고양이는 어디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싱크대 아래에서 얼굴을 내민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주변을 살핀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것처럼 천천히 몸을 빼낸다. 의자도 식탁도 책장도 선반도 없다. 몇 걸음 들어오다가 멈춰 방 안을 둘러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옆으로 누워 등을 바닥에 비빈다. 몸을 뒤집어 네 발을 허공에 들었다가 반대쪽으로 구른다. 식탁이 있던 자리를 가로질러 뛰어다니다가 방 한가운데에 몸을 길게 붙이고 눕는다.

얼마 뒤 고양이가 길게 한 번 운다. 빈 방에서 소리가 전보다 크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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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이 빠르게 방 안을 비추고 지나간다. 이내 작은 창으로 다시 강한 빛이 들어와 텅 빈 방을 좌에서 우로 훑고 사라진다. 골목을 돌아 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다.

방 가운데 누워 있던 고양이가 고개를 든다. 빈 벽과 바닥 위로 움직이는 빛을 따라 시선이 옮겨간다. 불빛이 사라진 뒤에도 창 쪽을 바라본다.

천장 가까이에 붙은 창은 대부분 닫혀 있었고 늘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다. 고양이가 그쪽을 오래 바라보는 모습은 본 기억이 없다. 책장을 창 아래로 옮겨 두었다면 고양이는 그 위에서 창밖을 구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장도 이제 없다.

고양이는 방 안을 천천히 한 바퀴 돈 뒤 다시 창 쪽으로 간다. 창 아래에는 딛고 올라갈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바닥에서 창턱까지는 꽤 높아 보인다. 저곳까지는 한 번에 뛰어오르기 어려울 것 같다. 고양이는 창 아래에 앉아 위를 올려다본다. 결국 저 창으로는 나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고양이가 몸을 낮춘다. 뒷다리에 힘을 모으는가 싶더니 훌쩍 뛰어오른다. 창턱에는 닿지 못하지만 한쪽으로 걷혀 있던 커튼에 앞발이 닿는다. 천이 크게 흔들린다. 고양이는 발톱을 걸고 매달려 더 위쪽을 잡는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더니 순식간에 창 가까이 올라간다.

창턱에 앞발을 올리고 몸을 끌어올린다. 열린 창 사이로 바깥 공기가 들어오고 털이 조금 흔들린다. 창밖의 지면은 고양이가 서 있는 곳과 거의 같은 높이에서 길 가장자리로 이어진다.

마침 사람의 다리가 창 앞을 지나간다. 이어 자전거 바퀴 하나가 빠르게 스친다. 고양이는 창턱에 선 채 그것들을 지켜본다. 성긴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창 사이로 살짝 머리를 내밀었다가 다시 안으로 당긴다.

한동안 꼼짝 않고 서 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바라본다. 어두운 방에는 이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벽의 푸른 얼룩과 누렇고 긴 자국, 바닥의 먼지가 보인다. 구석의 제습기에는 아직 표시등이 켜져 있다. 방문 너머 싱크대 앞에는 그릇이 그대로 놓여 있다. 커튼은 고양이가 매달렸던 자리에서 조금 비틀린 채 천천히 흔들린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다. 나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벽 위에 비친 제 그림자나 그냥 빈 방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 뒤 다시 고개를 돌린다. 이번에는 머리와 앞다리를 철창 사이로 먼저 밀어 넣고 몸을 길게 늘인다. 배가 철창 사이에 끼는 듯하더니 뒷다리가 마지막으로 안쪽에 남는다. 한 번 몸을 비틀어 그대로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잠깐 꼬리 끝이 보이다가 사라진다.

열린 창으로 바깥의 소리가 들어온다. 나는 남아 있다.